문화평론 - 류가미의 환상여행
<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보편사'속의 신화 와 의식>
...이 글들은 지금은 없어진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류가미 작가님이 연재하셨던 글들입니다. 사이트가 없어짐에 따라 소중한 글들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어진게 너무 아쉬워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류가미 작가님의 허락을 받지 못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03.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
영원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



지난 번 시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늘은 신석기 시대를 여행해볼까 합니다. 여행에 앞서, 중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배운 것을 복습해 봅시다. 구석기와 신석기를 가르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신석기와 구석기를 구분하는 데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째는 그 유적에서 돌을 쪼개 만든 타제 석기가 아니라 돌을 갈아 만든 마제 석기가 발견되느냐, 두번째는 그 유적에서 토기의 흔적이 나오느냐 하는 것 입니다.
 
갈아 만든 석기와 토기의 제작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구석기 때보다 나은 신석기의 기술력을 나타내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농업이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돌을 쪼개 만든 거친 석기로는 이삭을 베는 것이 힘들고 토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곧 곡식을 저장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처음으로 신석기 문명이 시작되었느냐는 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학자들의 논쟁거리였습니다. 모두들 자신이 속한 문명의 기원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까닭이지요. (아무리 아닌 척해도 역사학이라는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것입니다.)
 
누군가는 최초의 신석기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고 주장했고 또 누군가는 이집트를 최초의 신석기 문명으로 꼽았습니다. 또 누군가는 최초의 신석기 문명이 황하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가장 오래된 토기가 나온 것은 황하 근처였습니다.
 
▼ 수메르의 사원 지그라트- 복원도

 
그런데 최근 이라크 자르모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토기 사용이 반드시 신석기 경제 단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자르모 유적에서는 토기의 흔적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 탄화된 밀과 보리들이었습니다. 이 이삭들은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을 한 결과 BC 6750±200의 것임이 판명되었습니다. 따라서 BC 8000~BC 7000년경부터 이 지역에서는 농경이 이루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지요. 그것은 이집트, 인도, 중국의 농경 유적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선 것입니다.
 
자르모 유적 덕분에 누가 가장 오래된 문명이냐 하는 논쟁은 그럭저럭 종식 되었습니다. 다른 고고학적 발견이 있기 전에는 인류가 최초로 식물을 경작한 곳은 흔히들 비옥한 초승달지대(Fertile Crescent)라고 말하는 곳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 꽤나 시적인 이름이죠.
 
  ▼ 최초로 농업이 시작된 비옥한 초승달지역(좌)과 현대 서남아시아 지도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팔레스타인, 시리아, 북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고원을 잇는 지역을 가리킵니다. 과거의 그 지역은 지금과 달리 아주 비옥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라크에 있는 자르모 유적은 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포함됩니다.
 
사실 이 지역은 신석기 농업 혁명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청동기 문화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삶을 형태는 극적으로 변합니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인간들은 한 곳에 정착하게 되고 잉여 식량을 비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원전 3500년 전에 이곳에서 (정확히 말해서 지금의 이라크지역에서) 최초의 청동기 문화가 발생합니다.
 
이 최초의 청동기 문화를 건설한 사람들은 수메르인 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지금의 서남 아시아인들과는 인종적으로 다르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이들에게 빚을 졌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모든 문명의 기초는 바로 이들로부터 나왔으니까요. 문자, 바퀴, 달력, 천문학, 수학, 왕권, 사제, 조세 체계, 부기, 대규모 건축물 같은 고등 문명의 기초를 닦은 것은 그들이었습니다.
 
사실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지금의 실리콘 밸리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발달한 문명은 이집트를 거쳐 유럽으로 또는 인도를 거쳐 동북아로 퍼져나갑니다.
 
여기서 잠깐 이상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제가 학교 다닐 80 년대 만 해도, 신석기-청동기 문명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배웠으니까요. 4대 문명이라고 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문명을 꼽기도 하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하나로 묶어 삼대 문명이라고 하기도 했죠.
 
한동안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에서 각각의 문명이 독립적으로 발달되었다는 이론이 우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여기 메소포타미아에서 다른 지역으로 문명이 전파되어나갔다는 이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기원전 3500년 경 수메르에서 시작된 청동기 문화는 사방으로 전파됩니다. 그 후 오백년 뒤, 기원전 2950년 경 이집트에서 청동기 문화가 나타납니다. 이집트에 청동기 문화가 나타난 지 500년 후, 기원전 2500년 경에 에게 해 근처에서 청동기를 바탕으로 한 미노스 문명이 일어납니다. 또 이 시기 인도의 하랍파와 모헨조다르에서 청동기 문명이 일어나지요.
 
인도와 유럽에 청동기 문화가 발생한지 천년 뒤에 중국에서 최초의 청동기 문명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인 상(商)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이 청동기 문화는 기원을 전후로 중앙 아메리카로 전파되지요. 마치 호수에 던진 돌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듯,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한 청동기 문화는 그렇게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신석기에서 청동기로의 발전은 분쟁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둘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하는 것은 힘듭니다. 청동기에서 철기로의 진행이 단절적이고 불연속적이었다는 것을 비추어 볼 때 특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쨌거나 신석기-청동기 문화는 그 시대를 표상하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냅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어머니와 그의 연인이자 아들인 곡물신의 신화입니다.
 
잠시 여기서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더듬어 보죠. 구석기 시대의 시대 정신은, ‘주술이 있는 곳에 죽음은 없다’ 였습니다. 구석기인들은 죽음과 삶의 간격을 주술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주술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구석기인들에게 죽음과 삶은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이었습니다. 그런 구석기인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죽음 후에 가는 저 세계는 동일한 현실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석기인들은 구태여 삶과 죽음, 이 세계와 저 세계,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구석기인들에게 주술은 죽음과 삶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였지요. 주술을 통해서 살해당한 동물들은 저 세상에서 다시 생명을 얻고 매장을 통해서 죽은 자는 저 세상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주술을 통해서 죽음은 삶으로 전환되고 주술을 통해서 사라진 것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죠. 주술로 통해, 저 세상에 갔던 생명은 어떻게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올까요? 생명은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에 옵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주술적 절차와 여성의 출산 과정 사이의 유사성을 깨닫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샤먼이 이곳에 살던 생명을 저승으로 인도하듯 어머니는 저승에 살던 생명을 이 세상으로 인도합니다. 무덤이 그렇듯, 여성의 자궁은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통로인 셈이죠.
 
그런데 신석기 농업 혁명 이후, 사람들은 식물들이 일정한 주기에 따라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땅에 심어진 식물들은 겨울을 맞이해서 저 세계로 갔다가 다음 해 봄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옵니다. 따라서 대지는 어머니에 비유되고 대지에서 나고 자라는 곡물들은 대지의 아들이자 배우자로 여겨졌습니다. 신석기 농경문화가 발달된 모든 곳에서는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과 함께 그녀의 아들이자 배우자인 곡물신의 신화가 발견됩니다.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녀는 생명을 낳는 자비로운 여신이지만 또 한편에서 그녀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잡아먹는 암퇘지였기 때문입니다.
 
곡물신은 흔히 죽어서 재생하는 신(Dying God)이라고 불려집니다. 곡물신은 겨울이 되어 죽었다가 봄이 되어 소생하는 식물을 상징합니다. 사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찾아 드는 식물의 죽음과 재생. 영원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표상합니다. 

▼ 수메르의 이슈타르 신                                              ▼ 이집트의 이시스 신 

 

 

 

농경 문화에서는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이 한 쌍의 커플처럼 등장합니다. 수메르의 여신 이난다와 그녀의 연인이자 아들인 두무지. 바벨로니아의 여신 이슈타르와 그녀의 연인이자 아들인 탐무즈, 이집트의이시스와 그녀의 배우자인 오시리스, 프뤼기아의 퀴빌레와 그녀의 연인인 아티스가 그 예지요.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신화는 이러한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의 변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칼리 두르가 와 시바 – 인도
 
인도의 칼리 두르가와 그의 배우자인 시바 역시 이러한 신화의 또 다른 변종이지요. 칼리는 연꽃 침상에 누워 있는 시바의 몸 위에 서 있습니다. 칼리는 절단된 팔 들로 만든 띠와 두개골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있습니다. 그의 혀는 입 밖으로 늘어져 있는데 아마도 피를 맛보고 있는 듯 합니다. 왼손 중 하나에는 피 묻은 칼이 쥐고 있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머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른 손 중 하나로는 축복을 내리고 다른 손으로는 신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의 신화는 동북아에서도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황제와 우리나라의 왕은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사직(社稷)이라는 글자입니다. 여기서 사(社)는 토지의 여신을 나타내고 직(稷)은 곡물신을 나타내는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의 신화는 아메리카 대륙의 아즈텍 신화에서도 나타납니다. 아즈텍의 코아틀리쿠에는 글자 그대로 뱀의 여인을 뜻합니다. 그녀는 인도의 칼리처럼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꿈틀거리는 뱀들로 된 치마를 입고 사람들의 심장과 손을 이어서 만든 두개골 목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음식은 사람의 육체였습니다.
 
▼ 아즈텍의 지모신 코아틀리쿠에

 
그런데 이 지모신에게는 우이칠로포틀리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아버지 없이 우이칠로포틀리를 낳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이칠로포틀리가 태양의 신으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었다 재생하는 신(Dying God)이었던 것이죠.
 
사실 이러한 신화는 농경이 이루어졌던 모든 곳에서 나타납니다. '제임스 프레이저' 경은 그의 위대한 문화 인류학 저서인 ‘황금가지’를 통해서 전 세계에 퍼져있는 신석기-청동기의 신화를 총괄해 놓았습니다.
 
신석기-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 구석기 시대의 주술 대신 여신의 은총을 빌고 분노를 달래는 제의가 시작됩니다. 그러한 제의는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고 집단적으로 성교하고 희생된 제물을 나누어먹는 무시무시한 축제였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폭력이 성스러움과 연결되는지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p.s. 1
 
단순무식님께
이 연재는 현상학적인 접근입니다.
 
현상학은 존재론이나 논리학, 인식론 같은 철학의 다른 부류와 달리, 본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현상학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경험되느냐 입니다. 그래서 현상학에서는 논리와 근거보다는 직관과 통찰을 중시합니다. (정신분석학도 일종의 현상학입니다. 초자아와 리비도가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죠.)
 
님이 지적하신 대로, 네안데르탈인을 만나 인터뷰해보기 전에는 그들의 생각을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남긴 매장 유적을 보며, 그들이 죽음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직관을 통해 통찰(!)해 볼 수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죽은 사람을 태아처럼 웅크리게 만든 다음, 머리를 동쪽으로 누여 매장했습니다. 죽어서 뻣뻣해진 시체를 웅크린 자세로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나침반이 없던 시절에 동향을 찾는다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런 의미 없이 일부러 죽은 자를 그렇게 매장했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차라리 그들이 죽음을 밤이 되면 잠들었다가 태양이 뜨면 깨어나는 것처럼, 혹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갔다 다시 태어나는 과정으로 느꼈다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생각도 아닙니다. 사실 이 연재의 내용은 그 바닥의 (그것이 문화 인류학이 되었건, 정신분석학이 되었건 철학이 되었건) 일반론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글에서 논리적 비약은 치명적이거든요.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짜깁기는 할망정 창작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참고 문헌을 안 적은 것은 그런 행위가 너무 현학적으로 보일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면 출처를 밝혀 드릴게요.
 
p.s. 2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면서 이라크에 있던 수많은 신석기=청동기 유적들이 파괴되었다고 하더군요. 부시는 알았을까요? 자신이 우리들의 문명의 기초를 부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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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구석기인 - 주술이 있는 곳에 죽음은 없다


지난 시간에, 자신이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 있다는 인간의 자각은 아주 오랜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현실과 환상이라는 개념은 밤의 잠과 아침에 깨어남, 죽은 자의 저승과 산 자의 이승이라는 대립되는 개념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립되는 개념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문명의 출발점인 구석기 시대에 다다르고 맙니다. 사실 이러한 개념들은 인간됨의 시초라고 할 수 있지요.

처음으로 외부에 있는 객관 현실 말고 또 다른 세계가 존재했다고 느꼈던 사람은 바로 네안데르탈인이었습니다. 인류사의 가장 궁금증을 자아내는 수수께끼 중 하나는 바로 네안데르탈인 일겁니다. 10만년전에서 3만 5000년 전, 빙하기에 살았던 이 인류는 현생 인류보다 지능면에서나 신체 면에서 더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연 멸종하고 맙니다. 갑자기 중생대를 지배한 공룡들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되었다는 것보다 제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네안데르탈인이 가지고 있는 상반된 두 성향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동료를 먹는 식인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죽은 후에 삶을 기원하며 죽은 동료들을 매장하는 최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의 뇌수를 뽑아 먹는 그들이 어떻게 매장된 소년의 무덤에 꽃을 바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살인자인 동시에 문화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프로베니우스에 따르면, 원시부족들이 수렵생활을 하느냐, 농경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수렵생활을 하는 부족은 죽음을 폭력의 결과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농경생활을 하는 부족에게 죽음은 공동체 안에서 공유됩니다. 프로베니우스는 수렵생활을 하는 부족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주술적이라고 불렀고 농경생활을 하는 부족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신비적이라고 불렀습니다.

네안데르탈인뿐만 아니라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을 포함한 구석기인들은 식물을 채집하거나 동물을 사냥하면서 살았습니다. 아직 농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구석기의 삶은 수렵생활을 하는 원시 부족의 그것에 가까웠지요. 구석기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그들은 정기적으로 동물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동료인 인간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다분히 주술적입니다.

구석기인들의 인식구조에서 모든 죽음은 살해였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살해한 동료나 동물이 살아있는 자를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 속에 살았지요. 그 시절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이 죽음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어간 동료들이나 동물들의 분노를 어떻게 달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원시적인 공포와 죄의식을 덜기 위해 그들은 한 가지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바로 저승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 저 너머에는 죽은 자의 세상인, 저승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구석기인들은 인간과 동물이 죽어 이 세계를 떠나도 다른 세계에서 계속 삶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이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여행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계를 떠나 저 세계로 가는 여행을 돕는 방법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발전된 것이 매장과 제의였습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시신을 웅크린 태아 자세로 놓고 머리는 왼쪽, 즉 동쪽을 향해 뉘였습니다. 동쪽은 태양이 뜨는 곳이고 재생을 의미하는 방향입니다. 그들이 시신을 이런 방향으로 누인 것은 마치 서쪽으로 졌다 다음날 아침 동쪽으로 뜨는 태양처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시신 주위에 도끼를 비롯한 생활 용품들을 함께 묻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가 살아 있었을 때처럼 저 세계에 가서 이러한 물건들을 사용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리고 죽은 자의 넋을 저승으로 이끌어주는 전문가, 다시 말해 이승과 저승의 중재자 샤먼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실 구석기 시대에 샤먼이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남프랑스에 있는 투르아프레르에서 재미있는 유적이 발견됩니다. 그곳에 구석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동굴에는 여러 가지 암각화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투르아프레르의 마법사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이었습니다. 그는 머리에 사슴 뿔을 달고 있고 귀는 사슴 귀처럼 쫑긋합니다. 눈은 올빼미처럼 부리부리하고 늑대처럼 복슬복슬한 꼬리를 갖고 있습니다. 꼬리 뒤쪽으로 튀어나온 것은 고양이과의 생식기입니다. 그리고 그의 손은 곰처럼 생겼습니다. 다양한 동물의 특색을 갖고 있지만, 가슴 앞에 드리워진 수염과 두 발을 보면 그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왜 그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동물들의 신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샤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은 샤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다고 볼 때 어쩌면 그 둘은 다른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는 신을 부르는 샤먼이었던 것입니다. 투르아 프레야에 그려진 이 구석기의 샤먼은 춤을 추고 있습니다. 아마 그는 제의를 지내고 있는 중인 모양입니다.

구석기 샤먼들은 제의를 통해서 동물들의 사냥을 세속적인 행위가 성화된 행위로 바꾸어 놓습니다. 사냥을 떠나기 전에 남자들은 샤먼의 주도 아래 제의를 지냅니다. 샤먼은 사냥감이 되는 동물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러한 제의를 통해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에는 묘한 공모가 이루어집니다. 사냥꾼들이 사냥터에 가면 사냥감들은 자신을 먹이로 내어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들 동물들은 인간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사냥감을 죽인 후 정해진 제의를 지냅니다. 그 제의를 통해 살해당한 동물은 무사히 저승으로 갑니다.

아마 여기서 진짜 동물들이 스스로 죽으러 왔을 리가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해당하는 동물이 아닌 이상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구석기인들은 동물들을 죽이는데도 옳은 방식이 있고 그른 방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냥하기 전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동물을 사냥해도 육체만 죽게 되지 영혼은 다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동물들은 잠시 저 세계로 돌아가지만 언젠가는 이 세계로 돌아 올 수 있게 됩니다. 제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경우 사냥꾼과 살해당하는 동물 사이에는 놀라운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 없습니다. 구석기 인들은 잠시 동물들을 이 세계에게 저 세계로 돌려보냈을 뿐입니다. 한마디로 샤먼의 주술을 통해 죽음을 극복한 것이지요.

주술을 통해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의 전이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생명이 단절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술이 있는 곳에는 죽음은 없다.’ 그것이 그 시대의 모토였습니다. 구석기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밤이 되면 잠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깨어나는 잠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무덤은 재생으로 가는 통로였고 제의를 집행하는 샤먼은 저승으로 가는 길의 안내자였습니다. 구석기인들의 사고방식 속에 모든 생명들은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 잠과 깨어남을 끊임없이 오고 가며 순환합니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문 뱀처럼 말이지요.
 


그것이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상상하는 세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관은 농업혁명 이후 변하게 됩니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자, 사람들은 식량을 찾으러 유랑하는 대신 한 곳에 머물러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신석기 농업 혁명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은 구석기 때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이제 인류 역사의 새로운 세계관을 반영하는 새로운 신들이 등장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지인 위대한 어머니와 그의 아들이자 연인인 곡물신이죠.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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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세계의 끝, 경계로의 여행을 시작하면서


안녕하세요. ‘류가미의 환상여행’이라는 제목의 연재를 맡게 된 류가미 입니다.
 
상당히 이상한 제목이라고요? 사실 제게도 상당히 난처한 제목입니다. 처음 이 연재를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제가 생각했던 제목은 ‘트와이라이트 존(twilight zone)'이었습니다.

트와이라이트 존은,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경계.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중간 지대를 말합니다. 제가 이번 연재에서 다룰 이야기도 바로 환상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경계, 현실에서 환상으로 넘어가는 중간 지대에 관한 것입니다. 분명히 트와이라이트 존은 경계에 가지고 있는 모호함과 낯설음을 설명하는 좋은 제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트와이라이트 존이라는 제목을 쓰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첫째 이유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이 제목과 같은 이름의 tv 시리즈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제작된 영화 ‘트와이라이트 존’은 환상특급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 방영되었죠. 제가 트와이라이트 존이라는 이름을 쓰면 사람들은 제가 우주인이나 시간 여행, 초능력과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착각할 테니까요. 안 그런가요?
 
우주인도 시간 여행자도 초능력자도 괴물도 아니지만, 인간은 두 세계가 겹쳐지는 중간 지대에 삽니다. 어느 날 장자는 꿈에서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꿈에서 깨어난 장자는 자신이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자신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최신판은 매트릭스지요. 네오는 가상현실 속에서 깨어나 현실을 만납니다. 그러나 곧 그는 알게 되죠. 그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그 세계조차 또 다른 가상현실이었다는 것을.
 
사실 수많은 옛날이야기는 낯선 세계로의 여행을 담고 있지요. 심청전의 심청과 별주부전에서 토끼는 용궁으로 갑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쉬케는 잃어버린 남편을 찾기 위해 저승으로 갑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알리바바는 숨겨놓은 보물이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숲 속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녀를 만나지요. 마찬가지로 공원에서 졸고 있던 앨리스는 토끼를 쫓아 이상한 나라로 들어갑니다. 또, 도로시는 허리케인을 타고 오즈의 나라로 갑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객관적인 외부 현실 세계 말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느낍니다. 그 세계를 저승, 요정의 나라, 용궁, 뭐라고 부르던 말이지요.
 
자신이 두 세계의 경계에 서있다는 이러한 인간의 자각은 아주 오래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인간의 문명과 역사를 같이 합니다. 처음으로 외부에 있는 객관 현실 말고 또 다른 세계가 존재했다고 느꼈던 사람은 바로 네안데르탈인이니까요. 다음 시간에는 이 구석기의 철학자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계속)
 
 
류가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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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 명언이 떠오르네요.
윌리엄 제임스||
세상은 왜 텅 비어있지않고 무언가로 가득 차있는가? 형이상학의 시계가 멈추지않는것은 이 세계의 존재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과 동일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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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 류가미의 환상여행
<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보편사'속의 신화 와 의식>
...이 글들은 지금은 없어진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류가미 작가님이 연재하셨던 글들입니다. 사이트가 없어짐에 따라 소중한 글들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어진게 너무 아쉬워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류가미 작가님의 허락을 받지 못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문화평론 - 류가미의 환상여행
<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보편사'속의 신화 와 의식>


-프롤로그

 10일부터 데일리서프라이즈에 문화평론 ‘류가미의 환상여행’ 연재
(입력 :2005-01-08 13:54:00 신아령)

 

데일리서프라이즈가 10일부터 판타지 소설 <아이온>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소설가 류가미 씨의 문화평론 '류가미의 환상여행'을 연재할 예정이다. 류가미 씨는 이 평론에서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현재 우리의 사회에 벌어지는 현상들을 유명 애니메이션과 판타지 소설 등을 통해 분석하고 진단한다.

판타지 소설 ‘거미여인의 집’의 저자인 류가미 씨(36)와의 인터뷰는 매트릭스를 거쳐 해리 포터의 마법 세계를 갔다 온 기분이 들게 했다. 류가미 씨는 심리학, 현상학을 넘나들며 판타지 문학을 일구고 있는 작가이면서 동화책을 쓸 만큼 동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10일부터 데일리서프라이즈에 ‘류가미의 환상여행’이란 제목으로 연재를 할 류 작가와의 만남은 6일 본사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무엇을 ‘실제’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환상은 달라집니다. 이성과 광기가 동전의 양면이듯 사실도 환상을 배제하면서 생기는 것이죠. 우리는 조선시대 500년을 거치면서 ‘환상성’을 억압받았습니다. 개인의 느낌, 주관성이 억눌려 있다가 근대에 계몽주의로 바로 들어서게 되죠.”

류 작가는 “한국엔 제대로 된 환상 소설이 없다”고 일축한 후 “소위 식자들은 체제수호나 전복을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개인의 주관성은 실종됐다”고 말했다.

류 작가는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1999년 계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아름다운 날’을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라디오'를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경계,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중간 지대인 ‘ 트와이라이트 존(twilight zone)'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그는 “환상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경계, 현실에서 환상으로 넘어가는 중간 지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면서 “인간은 꿈과 현실, 두 세계가 겹쳐지는 중간 지대에 산다. 외부 객관적 사실과 내부의 환상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최신판이 매트릭스입니다. 네오가 가상현실 속에서 깨어나 현실을 보지만 그 세계조차 또 다른 가상현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해리 포터의 마법 이야기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성공도 그 일환이고요. 온라인 게임 모티브도 신화와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이미 ‘판타지’의 층이 두터워 졌다는 것을 의미하죠.”

류 작가는 “판타지는 급속도로 퍼져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판타지에 대한 정의가 없다. 이는 환상에 대한 정의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화의 큰 현상인데 제대로 평론하는 평론가가 하나도 없다” 며 “평론가들도 입을 다물고 있고 언론도 가시적으로 전해만 줄 뿐 분석은 없었다”고 말했다.

류 작가는 “판타지의 이론이 정립되지 않으면 판타지 문학이 영원히 삼류로 취급될 것”이라며 “분석의 틀을 마련하고 작가들이 자극 받을 수 있는 좋은 평론들이 나와야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이 빛이 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역량도 있지만 이를 인용하고 분석한 좋은 평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판타지 문학의 이론서를 작업하고 있는 그는 “작가가 이론서를 쓰고 있어야 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정치권보다 역사의 발전, 대중의 성장을 믿는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섬세한 통찰력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답게 정치권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 때 최루탄을 마다 않고 큰 소리로 외치면 좋은 세상이 올 거라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면서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사는 한 도구이다. 현재를 완벽하게 설명할 세계관은 없다”고 말했다.

류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에 답답한 면이 있다. 가끔씩 ‘지금이 80년대인 줄 아는 가’란 질문을 하게 된다” 며 “세상을 투영할 어떤 다른 이론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덜 교조적일 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고 전망했다.

정치권에 ‘ 열 받아서’ 가끔씩 글을 쓰기도 했다는 류 작가는 개혁입법 등 최근 현안에 대해 “한 번 진 것을 두고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며 “정치권을 믿지 않지만 역사의 발전과 대중의 성장을 믿는다. 하지만 개인이 조절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인근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조카들이 예뻐 동화책을 썼다’는 그는 초등학생들에 맞춰 무엇이든지 작게 만들어진 학교 구조를 보며 소녀처럼 좋아했다. 기자가 카메라를 들자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예쁘게 찍어 주세요”라고 말했다. 꿈과 현실의 중간지대에 서 있는 그는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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