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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가미의 환상여행] 03.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 영원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


문화평론 - 류가미의 환상여행
<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보편사'속의 신화 와 의식>
...이 글들은 지금은 없어진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류가미 작가님이 연재하셨던 글들입니다. 사이트가 없어짐에 따라 소중한 글들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어진게 너무 아쉬워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류가미 작가님의 허락을 받지 못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03.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
영원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



지난 번 시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늘은 신석기 시대를 여행해볼까 합니다. 여행에 앞서, 중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배운 것을 복습해 봅시다. 구석기와 신석기를 가르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신석기와 구석기를 구분하는 데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째는 그 유적에서 돌을 쪼개 만든 타제 석기가 아니라 돌을 갈아 만든 마제 석기가 발견되느냐, 두번째는 그 유적에서 토기의 흔적이 나오느냐 하는 것 입니다.
 
갈아 만든 석기와 토기의 제작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구석기 때보다 나은 신석기의 기술력을 나타내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농업이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돌을 쪼개 만든 거친 석기로는 이삭을 베는 것이 힘들고 토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곧 곡식을 저장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처음으로 신석기 문명이 시작되었느냐는 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학자들의 논쟁거리였습니다. 모두들 자신이 속한 문명의 기원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까닭이지요. (아무리 아닌 척해도 역사학이라는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것입니다.)
 
누군가는 최초의 신석기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고 주장했고 또 누군가는 이집트를 최초의 신석기 문명으로 꼽았습니다. 또 누군가는 최초의 신석기 문명이 황하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가장 오래된 토기가 나온 것은 황하 근처였습니다.
 
▼ 수메르의 사원 지그라트- 복원도

 
그런데 최근 이라크 자르모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토기 사용이 반드시 신석기 경제 단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자르모 유적에서는 토기의 흔적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 탄화된 밀과 보리들이었습니다. 이 이삭들은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을 한 결과 BC 6750±200의 것임이 판명되었습니다. 따라서 BC 8000~BC 7000년경부터 이 지역에서는 농경이 이루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지요. 그것은 이집트, 인도, 중국의 농경 유적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선 것입니다.
 
자르모 유적 덕분에 누가 가장 오래된 문명이냐 하는 논쟁은 그럭저럭 종식 되었습니다. 다른 고고학적 발견이 있기 전에는 인류가 최초로 식물을 경작한 곳은 흔히들 비옥한 초승달지대(Fertile Crescent)라고 말하는 곳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 꽤나 시적인 이름이죠.
 
  ▼ 최초로 농업이 시작된 비옥한 초승달지역(좌)과 현대 서남아시아 지도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팔레스타인, 시리아, 북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고원을 잇는 지역을 가리킵니다. 과거의 그 지역은 지금과 달리 아주 비옥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라크에 있는 자르모 유적은 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포함됩니다.
 
사실 이 지역은 신석기 농업 혁명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청동기 문화가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삶을 형태는 극적으로 변합니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인간들은 한 곳에 정착하게 되고 잉여 식량을 비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원전 3500년 전에 이곳에서 (정확히 말해서 지금의 이라크지역에서) 최초의 청동기 문화가 발생합니다.
 
이 최초의 청동기 문화를 건설한 사람들은 수메르인 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지금의 서남 아시아인들과는 인종적으로 다르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이들에게 빚을 졌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모든 문명의 기초는 바로 이들로부터 나왔으니까요. 문자, 바퀴, 달력, 천문학, 수학, 왕권, 사제, 조세 체계, 부기, 대규모 건축물 같은 고등 문명의 기초를 닦은 것은 그들이었습니다.
 
사실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지금의 실리콘 밸리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발달한 문명은 이집트를 거쳐 유럽으로 또는 인도를 거쳐 동북아로 퍼져나갑니다.
 
여기서 잠깐 이상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제가 학교 다닐 80 년대 만 해도, 신석기-청동기 문명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배웠으니까요. 4대 문명이라고 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문명을 꼽기도 하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하나로 묶어 삼대 문명이라고 하기도 했죠.
 
한동안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에서 각각의 문명이 독립적으로 발달되었다는 이론이 우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여기 메소포타미아에서 다른 지역으로 문명이 전파되어나갔다는 이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기원전 3500년 경 수메르에서 시작된 청동기 문화는 사방으로 전파됩니다. 그 후 오백년 뒤, 기원전 2950년 경 이집트에서 청동기 문화가 나타납니다. 이집트에 청동기 문화가 나타난 지 500년 후, 기원전 2500년 경에 에게 해 근처에서 청동기를 바탕으로 한 미노스 문명이 일어납니다. 또 이 시기 인도의 하랍파와 모헨조다르에서 청동기 문명이 일어나지요.
 
인도와 유럽에 청동기 문화가 발생한지 천년 뒤에 중국에서 최초의 청동기 문명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인 상(商)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이 청동기 문화는 기원을 전후로 중앙 아메리카로 전파되지요. 마치 호수에 던진 돌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듯,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한 청동기 문화는 그렇게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신석기에서 청동기로의 발전은 분쟁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둘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하는 것은 힘듭니다. 청동기에서 철기로의 진행이 단절적이고 불연속적이었다는 것을 비추어 볼 때 특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쨌거나 신석기-청동기 문화는 그 시대를 표상하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냅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어머니와 그의 연인이자 아들인 곡물신의 신화입니다.
 
잠시 여기서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더듬어 보죠. 구석기 시대의 시대 정신은, ‘주술이 있는 곳에 죽음은 없다’ 였습니다. 구석기인들은 죽음과 삶의 간격을 주술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주술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구석기인들에게 죽음과 삶은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이었습니다. 그런 구석기인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죽음 후에 가는 저 세계는 동일한 현실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석기인들은 구태여 삶과 죽음, 이 세계와 저 세계,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구석기인들에게 주술은 죽음과 삶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였지요. 주술을 통해서 살해당한 동물들은 저 세상에서 다시 생명을 얻고 매장을 통해서 죽은 자는 저 세상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주술을 통해서 죽음은 삶으로 전환되고 주술을 통해서 사라진 것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죠. 주술로 통해, 저 세상에 갔던 생명은 어떻게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올까요? 생명은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에 옵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주술적 절차와 여성의 출산 과정 사이의 유사성을 깨닫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샤먼이 이곳에 살던 생명을 저승으로 인도하듯 어머니는 저승에 살던 생명을 이 세상으로 인도합니다. 무덤이 그렇듯, 여성의 자궁은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통로인 셈이죠.
 
그런데 신석기 농업 혁명 이후, 사람들은 식물들이 일정한 주기에 따라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땅에 심어진 식물들은 겨울을 맞이해서 저 세계로 갔다가 다음 해 봄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옵니다. 따라서 대지는 어머니에 비유되고 대지에서 나고 자라는 곡물들은 대지의 아들이자 배우자로 여겨졌습니다. 신석기 농경문화가 발달된 모든 곳에서는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과 함께 그녀의 아들이자 배우자인 곡물신의 신화가 발견됩니다.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녀는 생명을 낳는 자비로운 여신이지만 또 한편에서 그녀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잡아먹는 암퇘지였기 때문입니다.
 
곡물신은 흔히 죽어서 재생하는 신(Dying God)이라고 불려집니다. 곡물신은 겨울이 되어 죽었다가 봄이 되어 소생하는 식물을 상징합니다. 사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찾아 드는 식물의 죽음과 재생. 영원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표상합니다. 

▼ 수메르의 이슈타르 신                                              ▼ 이집트의 이시스 신 

 

 

 

농경 문화에서는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이 한 쌍의 커플처럼 등장합니다. 수메르의 여신 이난다와 그녀의 연인이자 아들인 두무지. 바벨로니아의 여신 이슈타르와 그녀의 연인이자 아들인 탐무즈, 이집트의이시스와 그녀의 배우자인 오시리스, 프뤼기아의 퀴빌레와 그녀의 연인인 아티스가 그 예지요.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신화는 이러한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의 변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칼리 두르가 와 시바 – 인도
 
인도의 칼리 두르가와 그의 배우자인 시바 역시 이러한 신화의 또 다른 변종이지요. 칼리는 연꽃 침상에 누워 있는 시바의 몸 위에 서 있습니다. 칼리는 절단된 팔 들로 만든 띠와 두개골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있습니다. 그의 혀는 입 밖으로 늘어져 있는데 아마도 피를 맛보고 있는 듯 합니다. 왼손 중 하나에는 피 묻은 칼이 쥐고 있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머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른 손 중 하나로는 축복을 내리고 다른 손으로는 신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의 신화는 동북아에서도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황제와 우리나라의 왕은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사직(社稷)이라는 글자입니다. 여기서 사(社)는 토지의 여신을 나타내고 직(稷)은 곡물신을 나타내는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지의 여신과 곡물신의 신화는 아메리카 대륙의 아즈텍 신화에서도 나타납니다. 아즈텍의 코아틀리쿠에는 글자 그대로 뱀의 여인을 뜻합니다. 그녀는 인도의 칼리처럼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꿈틀거리는 뱀들로 된 치마를 입고 사람들의 심장과 손을 이어서 만든 두개골 목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음식은 사람의 육체였습니다.
 
▼ 아즈텍의 지모신 코아틀리쿠에

 
그런데 이 지모신에게는 우이칠로포틀리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아버지 없이 우이칠로포틀리를 낳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이칠로포틀리가 태양의 신으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었다 재생하는 신(Dying God)이었던 것이죠.
 
사실 이러한 신화는 농경이 이루어졌던 모든 곳에서 나타납니다. '제임스 프레이저' 경은 그의 위대한 문화 인류학 저서인 ‘황금가지’를 통해서 전 세계에 퍼져있는 신석기-청동기의 신화를 총괄해 놓았습니다.
 
신석기-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 구석기 시대의 주술 대신 여신의 은총을 빌고 분노를 달래는 제의가 시작됩니다. 그러한 제의는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고 집단적으로 성교하고 희생된 제물을 나누어먹는 무시무시한 축제였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폭력이 성스러움과 연결되는지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p.s. 1
 
단순무식님께
이 연재는 현상학적인 접근입니다.
 
현상학은 존재론이나 논리학, 인식론 같은 철학의 다른 부류와 달리, 본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현상학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경험되느냐 입니다. 그래서 현상학에서는 논리와 근거보다는 직관과 통찰을 중시합니다. (정신분석학도 일종의 현상학입니다. 초자아와 리비도가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죠.)
 
님이 지적하신 대로, 네안데르탈인을 만나 인터뷰해보기 전에는 그들의 생각을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남긴 매장 유적을 보며, 그들이 죽음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직관을 통해 통찰(!)해 볼 수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죽은 사람을 태아처럼 웅크리게 만든 다음, 머리를 동쪽으로 누여 매장했습니다. 죽어서 뻣뻣해진 시체를 웅크린 자세로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나침반이 없던 시절에 동향을 찾는다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런 의미 없이 일부러 죽은 자를 그렇게 매장했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차라리 그들이 죽음을 밤이 되면 잠들었다가 태양이 뜨면 깨어나는 것처럼, 혹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갔다 다시 태어나는 과정으로 느꼈다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생각도 아닙니다. 사실 이 연재의 내용은 그 바닥의 (그것이 문화 인류학이 되었건, 정신분석학이 되었건 철학이 되었건) 일반론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글에서 논리적 비약은 치명적이거든요.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짜깁기는 할망정 창작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참고 문헌을 안 적은 것은 그런 행위가 너무 현학적으로 보일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면 출처를 밝혀 드릴게요.
 
p.s. 2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면서 이라크에 있던 수많은 신석기=청동기 유적들이 파괴되었다고 하더군요. 부시는 알았을까요? 자신이 우리들의 문명의 기초를 부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