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평론 - 류가미의 환상여행
<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보편사'속의 신화 와 의식>
...이 글들은 지금은 없어진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류가미 작가님이 연재하셨던 글들입니다. 사이트가 없어짐에 따라 소중한 글들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어진게 너무 아쉬워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류가미 작가님의 허락을 받지 못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02. 구석기인 - 주술이 있는 곳에 죽음은 없다


지난 시간에, 자신이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 있다는 인간의 자각은 아주 오랜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현실과 환상이라는 개념은 밤의 잠과 아침에 깨어남, 죽은 자의 저승과 산 자의 이승이라는 대립되는 개념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립되는 개념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문명의 출발점인 구석기 시대에 다다르고 맙니다. 사실 이러한 개념들은 인간됨의 시초라고 할 수 있지요.

처음으로 외부에 있는 객관 현실 말고 또 다른 세계가 존재했다고 느꼈던 사람은 바로 네안데르탈인이었습니다. 인류사의 가장 궁금증을 자아내는 수수께끼 중 하나는 바로 네안데르탈인 일겁니다. 10만년전에서 3만 5000년 전, 빙하기에 살았던 이 인류는 현생 인류보다 지능면에서나 신체 면에서 더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연 멸종하고 맙니다. 갑자기 중생대를 지배한 공룡들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되었다는 것보다 제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네안데르탈인이 가지고 있는 상반된 두 성향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동료를 먹는 식인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죽은 후에 삶을 기원하며 죽은 동료들을 매장하는 최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의 뇌수를 뽑아 먹는 그들이 어떻게 매장된 소년의 무덤에 꽃을 바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살인자인 동시에 문화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프로베니우스에 따르면, 원시부족들이 수렵생활을 하느냐, 농경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수렵생활을 하는 부족은 죽음을 폭력의 결과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농경생활을 하는 부족에게 죽음은 공동체 안에서 공유됩니다. 프로베니우스는 수렵생활을 하는 부족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주술적이라고 불렀고 농경생활을 하는 부족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신비적이라고 불렀습니다.

네안데르탈인뿐만 아니라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을 포함한 구석기인들은 식물을 채집하거나 동물을 사냥하면서 살았습니다. 아직 농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구석기의 삶은 수렵생활을 하는 원시 부족의 그것에 가까웠지요. 구석기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그들은 정기적으로 동물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동료인 인간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다분히 주술적입니다.

구석기인들의 인식구조에서 모든 죽음은 살해였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살해한 동료나 동물이 살아있는 자를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 속에 살았지요. 그 시절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이 죽음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어간 동료들이나 동물들의 분노를 어떻게 달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원시적인 공포와 죄의식을 덜기 위해 그들은 한 가지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바로 저승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 저 너머에는 죽은 자의 세상인, 저승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구석기인들은 인간과 동물이 죽어 이 세계를 떠나도 다른 세계에서 계속 삶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이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여행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계를 떠나 저 세계로 가는 여행을 돕는 방법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발전된 것이 매장과 제의였습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시신을 웅크린 태아 자세로 놓고 머리는 왼쪽, 즉 동쪽을 향해 뉘였습니다. 동쪽은 태양이 뜨는 곳이고 재생을 의미하는 방향입니다. 그들이 시신을 이런 방향으로 누인 것은 마치 서쪽으로 졌다 다음날 아침 동쪽으로 뜨는 태양처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시신 주위에 도끼를 비롯한 생활 용품들을 함께 묻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가 살아 있었을 때처럼 저 세계에 가서 이러한 물건들을 사용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리고 죽은 자의 넋을 저승으로 이끌어주는 전문가, 다시 말해 이승과 저승의 중재자 샤먼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실 구석기 시대에 샤먼이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남프랑스에 있는 투르아프레르에서 재미있는 유적이 발견됩니다. 그곳에 구석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동굴에는 여러 가지 암각화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투르아프레르의 마법사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이었습니다. 그는 머리에 사슴 뿔을 달고 있고 귀는 사슴 귀처럼 쫑긋합니다. 눈은 올빼미처럼 부리부리하고 늑대처럼 복슬복슬한 꼬리를 갖고 있습니다. 꼬리 뒤쪽으로 튀어나온 것은 고양이과의 생식기입니다. 그리고 그의 손은 곰처럼 생겼습니다. 다양한 동물의 특색을 갖고 있지만, 가슴 앞에 드리워진 수염과 두 발을 보면 그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왜 그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동물들의 신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샤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은 샤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다고 볼 때 어쩌면 그 둘은 다른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는 신을 부르는 샤먼이었던 것입니다. 투르아 프레야에 그려진 이 구석기의 샤먼은 춤을 추고 있습니다. 아마 그는 제의를 지내고 있는 중인 모양입니다.

구석기 샤먼들은 제의를 통해서 동물들의 사냥을 세속적인 행위가 성화된 행위로 바꾸어 놓습니다. 사냥을 떠나기 전에 남자들은 샤먼의 주도 아래 제의를 지냅니다. 샤먼은 사냥감이 되는 동물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러한 제의를 통해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에는 묘한 공모가 이루어집니다. 사냥꾼들이 사냥터에 가면 사냥감들은 자신을 먹이로 내어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들 동물들은 인간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사냥감을 죽인 후 정해진 제의를 지냅니다. 그 제의를 통해 살해당한 동물은 무사히 저승으로 갑니다.

아마 여기서 진짜 동물들이 스스로 죽으러 왔을 리가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해당하는 동물이 아닌 이상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구석기인들은 동물들을 죽이는데도 옳은 방식이 있고 그른 방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냥하기 전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동물을 사냥해도 육체만 죽게 되지 영혼은 다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동물들은 잠시 저 세계로 돌아가지만 언젠가는 이 세계로 돌아 올 수 있게 됩니다. 제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경우 사냥꾼과 살해당하는 동물 사이에는 놀라운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 없습니다. 구석기 인들은 잠시 동물들을 이 세계에게 저 세계로 돌려보냈을 뿐입니다. 한마디로 샤먼의 주술을 통해 죽음을 극복한 것이지요.

주술을 통해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의 전이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생명이 단절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술이 있는 곳에는 죽음은 없다.’ 그것이 그 시대의 모토였습니다. 구석기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밤이 되면 잠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깨어나는 잠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무덤은 재생으로 가는 통로였고 제의를 집행하는 샤먼은 저승으로 가는 길의 안내자였습니다. 구석기인들의 사고방식 속에 모든 생명들은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 잠과 깨어남을 끊임없이 오고 가며 순환합니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문 뱀처럼 말이지요.
 


그것이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상상하는 세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관은 농업혁명 이후 변하게 됩니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자, 사람들은 식량을 찾으러 유랑하는 대신 한 곳에 머물러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신석기 농업 혁명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은 구석기 때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이제 인류 역사의 새로운 세계관을 반영하는 새로운 신들이 등장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지인 위대한 어머니와 그의 아들이자 연인인 곡물신이죠.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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